조후, 판의 온도 — 계절이 모든 풀이보다 먼저 옵니다
모든 풀이보다 먼저 오는 질문
사주를 처음 배우면 대개 힘의 저울부터 익힙니다. 내 기운이 강한가 약한가를 재는 신강약(身强弱)의 저울입니다. 그런데 무릎탁 총각은 판을 펼치면 그보다 먼저 묻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이 판이 뜨거운가, 차가운가 하는 물음입니다. 조후(調候)는 곧 기후(氣候)라는 뜻으로, 태어난 계절이 여덟 글자에 남긴 온도를 살피는 자리입니다. 계절의 춥고 더움은 판을 볼 때 가장 먼저 살피는 관문이라, 힘의 저울보다도 앞세워 본다는 것이 무릎탁 총각의 전통이 서 있는 자리입니다. 신강약의 저울 이야기는 칼럼의 다른 글에서 따로 다루었으니, 이 글에서는 그 저울보다 먼저 오는 온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온도를 보는 자리는 셋입니다. 첫째는 월지(月支)입니다. 태어난 달을 나타내는 글자로, 계절을 주관하는 자리라 가장 무겁게 봅니다. 둘째는 시지(時支)입니다. 하루 가운데 낮에 태어났는가 밤에 태어났는가를 가르는 자리입니다. 같은 겨울이라도 한낮에 태어난 판과 한밤에 태어난 판은 온도가 다르다고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머지 글자들에서 물의 기운인 수(水)와 불의 기운인 화(火)가 어느 쪽으로 치우쳤는가를 봅니다. 이 셋을 합쳐 판의 온도가 잡힙니다. 겨울 한밤에 태어나 물 글자까지 겹친 판이라면 차가운 판이고, 여름 한낮에 태어나 불 글자까지 겹친 판이라면 뜨거운 판입니다.
이 관문이 앞선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은 처방끼리 어긋날 때입니다. 겨울에 태어난 판에 불이 필요한데, 그 불이 힘의 저울로 보면 나를 눌러 오는 기운일 수 있습니다. 저울만 보면 반갑지 않은 손님입니다. 그래도 계절이 그것을 부르고 있다면 온도 쪽을 앞세워 봅니다. 옛 글이 겨울에 든 판에 굳이 뜨거운 기운을 청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춥고 더움을 고르는 눈, 넘치면 덜어 내고 모자라면 보태는 눈, 여덟 글자의 짜임새를 보는 눈이 한꺼번에 맞아떨어지는 판은 드뭅니다. 하나가 맞으면 다른 하나가 어긋나 있는 것이 보통이라, 어느 눈을 앞세울지부터 정하고 나머지를 함께 보는 것입니다.
온도와 습도를 가르지 않습니다
고전의 조후론은 한난조습(寒暖燥濕)이라 하여 네 글자를 씁니다. 차고 따뜻함은 온도의 축이고, 마르고 젖음은 습도의 축입니다. 그리고 온도는 하늘 글자인 천간(天干)에서, 습도는 땅 글자인 지지(地支)에서 따로 잰다고 가릅니다. 무릎탁 총각은 이 갈림을 따르지 않습니다. 논거는 계절 그 자체에 있습니다. 더운 여름은 습하고, 추운 겨울은 건조합니다. 온도와 습도는 실제 계절에서 늘 함께 움직이니, 따로 떼어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습도는 온도를 따라오는 것이지, 별도의 저울을 하나 더 세워야 하는 축이 아니라고 보는 셈입니다.
이 판단은 간지(干支)를 위아래로 쪼개 읽지 않는 평소의 독법과도 잇닿아 있습니다. 하늘 글자 따로 땅 글자 따로가 아니라 한 기둥을 한 몸으로 읽는 눈이, 온도와 습도도 한 저울로 읽게 한 셈입니다. 그래서 무릎탁 총각의 전통에서 조후는 간명해집니다. 수와 화, 물과 불의 세력이 어느 쪽으로 기울었는가 하는 문제 하나입니다. 무릎탁 총각 스스로도 조후론자가 아니라고 못 박습니다. 조후를 크게 쓰되, 고전 조후론의 세부 문법을 그대로 받아 오지는 않는다는 뜻으로 보시면 됩니다. 이 눈으로 보면 판의 온도를 재는 데 필요한 것은 결국 물과 불이 어디에 놓였고 어느 쪽이 센가, 그 하나로 모입니다.
차가운 판의 결, 뜨거운 판의 결
추운 계절에 태어난 판은 따뜻한 불의 기운이 반갑습니다. 아니, 반갑다는 말로는 모자랍니다. 이 전통에서 희(喜)는 기쁘다가 아니라 필요하다로 읽습니다. 절박한 필요라는 뜻입니다. 여덟 글자 안에 불이 한 점이라도 있으면 그 자리가 귀한 의지처가 됩니다. 반대로 불이 없고 찬 기운만 겹치면, 겉으로 큰일이 없어도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고 의욕이 식기 쉬운 결이 과제로 거론됩니다. 그 기운이 큰 흐름에서 들어와 판을 데워 주는 시기에 비로소 숨통이 트인다고 봅니다. 계절이 채워질 때 처음으로 살 만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있다고 이야기됩니다.
더운 계절에 태어난 판은 시원한 물이 그 자리에 섭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물이 있느냐만이 아니라 어디에 놓였느냐입니다. 글자를 늘어놓고 개수를 세는 것과 실제 배열은 다른 이야기라, 물이 열기와 마주 닿는 자리에 있어야 제 일을 합니다. 자리가 멀거나 사이에 다른 기운이 끼어 있으면, 있어도 손이 닿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봅니다. 같은 더위라도 나를 가리키는 글자가 무엇이냐에 따라 부르는 것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나무의 기운이 여름의 불을 크게 피워 올린 판이라면, 그 불을 정면으로 눌러 끄는 쪽보다 나를 채워 주는 기운으로 축이고 식혀 주는 쪽이 어울린다고 봅니다.
온도가 깨졌다고 다 같은 결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무릎탁 총각은 깨진 방향에 따라 마음의 결이 다르게 깔린다고 봅니다. 물 쪽으로 깨져 차가워진 판은 까닭 없이 가라앉는 쪽 하나로 좁게 모입니다. 불 쪽으로 깨져 뜨거워진 판은 나타나는 폭이 그보다 훨씬 넓습니다. 들뜸과 내려앉음을 오가는 출렁임의 진폭이 크고, 그 진폭을 스스로 다루기 어렵다는 결입니다. 드러내고 뽐내는 힘이 화려하게 쓰이다가도, 같은 힘이 말끝을 날카롭게 벼려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닿는 쪽으로 미끄러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것은 통변 위에 겹쳐 읽는 필터 하나이지 사람을 규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같은 판이라도 발현은 사람마다 갈리고, 원국의 물 글자와 그것을 채워 주는 운(運)이 그 진폭을 눅이는 자리가 됩니다.
국(局)이 서면 셈이 뒤집힙니다
이 온도의 셈에도 예외가 있습니다. 세 글자가 뭉쳐 하나의 큰 세력을 이루는 삼합(三合)이나 방합(方合)으로 국(局)이 선 판입니다. 국은 사주에서 표현되는 것 가운데 제일 센 것이라고 무릎탁 총각은 못 박습니다. 월지와 시지를 무겁게 놓고 나머지를 더하던 평소의 저울이 여기서는 뒤로 밀립니다. 세 글자가 뭉친 세력이 판의 온도를 통째로 정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물의 국이 서면 찬 쪽으로, 불의 국이 서면 뜨거운 쪽으로 판이 그렇게 굳습니다. 앞에서 월지가 첫째요 시지가 둘째라고 말씀드렸지만, 국이 선 판에서는 그 차례보다 뭉친 세력이 먼저라는 뜻입니다.
이때 함께 흔들리는 것이 지지 속에 숨은 글자, 지장간(支藏干)의 뿌리입니다. 무릎탁 총각은 지지를 지장간을 담은 케이스에 견줍니다. 케이스가 국을 이루며 변질되거나 상하면 그 속의 내용물은 꺼내 쓰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불의 국이 선 판에서 그 한 축이 된 글자 속에 약하게 얹혀 있던 다른 기운은, 마그마 속에 같은 성분이 녹아 있는 꼴이 되어 뿌리 노릇을 못 하게 됩니다. 숨은 글자 이야기는 칼럼의 다른 글에서 따로 다루었으니 함께 보시면 좋습니다. 그래서 국이 선 판에서는 반대 기운의 글자를 하나하나 따로 저울에 올립니다. 치우친 쪽을 거스르는 글자가 뭉쳐 있는지 벌어져 있는지, 제 뿌리를 지니고 있는지까지 보아야 구제의 폭이 잡힌다고 무릎탁 총각은 일러 줍니다.
성취의 축과 온도의 축은 따로 돕니다
마지막으로, 이 온도의 축이 무엇을 비추는 자리인지 짚어 두겠습니다. 조후가 비추는 곳은 일의 성패가 아니라 마음의 바탕색입니다. 무릎탁 총각은 성취의 축과 온도의 축이 별개로 돈다고 봅니다. 세속의 성취를 크게 이루는 명식은 대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판이라, 힘의 저울로 보면 오히려 균형이 무너진 쪽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 치우침이 밀어붙이는 힘이 되지만, 이루는 동안 벗과 가족과 제 시간을 갈아 넣게 되니 흡족함은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된다고 짚습니다. 조후는 그 다른 이야기 쪽에 선 축입니다. 성취의 눈금이 높이 올라간 판에서도 물과 불의 저울이 상해 있으면, 마음의 바탕색은 따로 가라앉거나 출렁일 수 있다고 읽습니다.
겉으로 쌓인 것과 안에서 도는 온도는 서로를 대신해 주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이룬 것이 적지 않고 남 보기에 모자랄 것이 없어도, 온도가 비어 있으면 마음 쪽은 따로 이야기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결을 사람됨의 흠이나 자라 온 환경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태어난 계절이 남긴 몫으로 읽습니다. 명리가 끝내 바라보는 지점도 세속의 성취보다 삶의 균형이라고 무릎탁 총각은 일러 줍니다. 돈과 명예를 좇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자는 이야기입니다. 온도의 축이 상한 판일수록 성취의 눈금보다 제 마음의 눈금을 가끔 돌아보는 쪽에 무게를 둡니다.
당신은 어느 계절, 하루의 어느 때에 태어나셨습니까. 그 계절이 부르는 기운이 여덟 글자 안에 한 점이라도 있는지, 있다면 어느 자리에 놓였는지 — 이 글의 물음을 제 판으로 가져가는 첫걸음이 거기에 있습니다. 제 명식의 온도가 궁금해지셨다면, 만세력으로 여덟 글자를 펼쳐 월지와 시지부터 한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