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망 — 비어 있다는 표시의 참뜻
짝을 얻지 못하고 남은 두 글자
겉으로 드러난 성격을 적는 천간(天干)은 열 개이고, 속마음과 생활을 적는 지지(地支)는 열두 개입니다. 이 둘을 하나씩 짝지어 예순 개의 간지(干支)를 만드는데, 열 개씩 한 묶음으로 도는 동안 지지 두 개는 매번 짝을 얻지 못하고 남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 남은 두 글자를 비어 있다고 보고 공망(空亡)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무릎탁 총각의 전통은 태어난 날의 두 글자, 곧 일주(日柱)를 기준으로 이 두 글자를 잡습니다.
이름만 보면 겁을 주는 것 같지만 만듦새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열 개와 열두 개를 짝지으면 누구의 사주에서든 두 글자는 반드시 남으니, 공망은 어떤 사람에게만 찍히는 낙인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두 글자씩 배정되는 표시입니다. 기준이 일주이다 보니 일지(日支) 자리는 구조적으로 공망이 될 수 없어, 많아야 셋까지만 앉는 작은 꼬리표입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덜 잡히는 것
무릎탁 총각은 공망의 작용을 사라짐이 아니라 무력화라고 짚습니다. 글자는 그대로 있고, 그 글자가 맡은 몫이 평소만큼 또렷하게 굴러가지 않는다고 보는 것입니다. 있던 것이 없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있는 것에 힘이 덜 실리는 이야기입니다. 이 갈림 하나가 공망을 겁의 재료로 읽는 길과 참고로 읽는 길을 나눕니다.
여기서 선이 하나 그어지는데, 공망이 낮추는 것은 십성(十星)의 층, 곧 그 글자가 내 삶에서 맡는 역할의 층까지입니다. 다섯 기운이 서로 힘을 주고 누르는 오행(五行)의 층에는 공망이 걸리지 않습니다. 병화(丙火) 일간에게 신금(申金)이 공망이면 재물을 다루는 역할의 힘은 낮아지지만, 그 신금이 금(金)으로서 수(水)를 힘을 주는 일은 공망과 무관하게 평소대로 굴러갑니다. 월지(月支)에 앉은 공망을 두고는, 영향력이 조금 줄 수는 있어도 월지는 여전히 월지라는 것이 무릎탁 총각의 정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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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망으로 세지 않는 자리들
공망 글자가 사주 안에 앉아 있다고 해서 전부 공망으로 세는 것도 아닙니다. 그 글자가 판 안에서 이미 합이나 형, 충의 관계를 맺고 있으면 무릎탁 총각은 공망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다른 글자와 얽혀 변질된 상태의 빈칸은 더 이상 빈칸이 아니라는 논리입니다. 만세력에 공망 표시가 찍혔더라도 그 자리가 실제로 공망으로 서는지는 판의 구성을 함께 보아야 압니다.
운에서 오는 공망도 있습니다. 올해의 지지가 제 공망 글자에 드는 해를 행운공망(行運空亡)이라 부르는데, 여기서 행운은 복이 아니라 다닐 행을 쓴 말입니다. 한 해의 세운(歲運)과 하루의 일진(日辰)까지만 보고 열 해의 대운(大運)에는 걸지 않으며, 사주 안에 이미 공망 자리가 선 사람은 운의 공망을 따로 얹지 않습니다. 반대로 그 자리에 올해의 글자가 합이나 형, 충을 걸어 오면 한동안 살아나는데, 이를 해공(解空)이라 부릅니다.
즐겨 쓰지 않는다는 조건까지가 전통입니다
이 이론을 전하는 태도까지가 전통의 일부입니다. 무릎탁 총각 본인은 공망을 즐겨 쓰지 않는다고 밝힙니다. 천간은 양이고 지지는 음이라 둘은 갈라 놓을 수 없는 한 쌍인데, 천간 없이 혼자 남은 지지라는 전제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론을 쓸지 말지 고르는 일까지가 풀이의 실력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공망을 읽는 자리는 결국 하나로 모입니다. 좋고 나쁨의 제목이 아니라 참고 하나로 두면 넉넉하다는 것입니다. 공망 글자 위에 이런저런 풀이를 쌓아 무엇이 없는 팔자라고 단정하는 칸을 무릎탁 총각의 전통은 신비주의라 비판하며 거리를 둡니다. 공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겁을 주는 풀이를 만나셨다면, 그 풀이가 기준을 어디에 두었는지부터 물어보시면 됩니다.
제 만세력을 펴고 공망 두 글자가 무엇인지, 그 글자가 판 안에 들어와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들어와 있다면 겁낼 곳이 아니라 힘이 덜 실리는 성향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