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 — 십 년의 계절이 하는 일과 안 하는 일
원국은 자동차, 대운은 길
무릎탁 총각이 운을 설명할 때 가장 앞에 두는 그림은 자동차입니다. 원국(原局)은 태어날 때 자연에서 받은 차이고, 대운(大運)은 그 차 앞에 놓인 길입니다. 큰 차를 받았는데 앞이 굽이진 비포장길일 수 있고, 작은 차를 받았는데 마침 포장도로가 깔려 있을 수도 있습니다. 길은 한 방향으로만 뻗지 않고 꺾이고 바뀌는데, 대운이 열 해마다 갈리는 것이 바로 그 대목입니다.
비유를 걷어 내면 이렇습니다. 원국은 그 사람의 기질과 성향과 그릇이고, 대운은 그에게 주어진 기운의 환경입니다. 전통은 이것을 원국은 상태(狀態)이고 운은 변화(變化)라는 한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변화는 늘 기존의 상태를 기준으로 읽는 법이라, 같은 운이 와도 서 있던 상태가 다르면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개인의 영역 안에서 원국과 대운의 무게를 무릎탁 총각은 대략 다섯 대 다섯으로 잡습니다. 대운은 여덟 글자의 곁다리가 아니라 절반의 무게로 서 있는 줄입니다.
월주에서 이어 뽑는 계절
대운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숫자가 아닙니다. 대운의 기점은 월주(月柱)이고, 방향은 태어난 해 천간(天干)의 음양과 성별을 견주어 순행과 역행으로 갈립니다. 월주는 계절을 주관하는 자리라, 거기서 이어져 나온 대운도 결국 계절의 흐름을 말합니다. 십 년마다 대운이 바뀐다는 것은 십 년짜리 계절이 갈린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전통이 바로잡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첫 대운수 이전의 어린 나이에는 대운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대운은 애초에 월주에서 이어진 연장선이라 첫 대운이 서기 전에는 월주 자체가 첫 대운 노릇을 합니다. 그러니 대운이 없는 나이는 없습니다. 또 하나, 무릎탁 총각은 대운을 열 해짜리 낱개로 먼저 보지 않습니다. 방국(方局)의 눈으로 30년을 묶어 목의 구간인지 화의 구간인지를 먼저 잡고, 그다음에 열 해짜리 대운 하나하나로 내려옵니다.
복권이 아니라 지형
«대운 들어왔다»는 말이 돌아다닙니다. 복권에 당첨되듯 판이 뒤집히는 시절이 왔다는 뜻으로 쓰이곤 합니다. 그 말의 절반만 사실입니다. 큰 흐름이 갈리는 구간에 들어섰다는 뜻이라면 사실이지만, 대운은 복권이 아니라 지형입니다. 길이 포장도로로 바뀌었다고 차가 저절로 목적지에 닿는 것은 아니고, 비포장길로 접어들었다고 운행이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전통은 반기는 구간의 운, 곧 용신(用神) 운이 하는 일을 판을 뒤집는 것이 아니라 균형이 잡히는 것으로 봅니다. 튀어나온 곳은 조금 들어가고 짜부라진 곳은 조금 올라와 고른 모양이 되는 시절입니다. 거스르는 구간도 마찬가지라, 어떤 자세로 지나는가에 따라 흉하지 않게 지나가기도 합니다. 다만 원국이 운을 이기지는 못합니다. 여름을 견딜 수는 있어도 여름을 가을로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이 무릎탁 총각의 말입니다. 그 안에서 사람의 행위가 개입할 여지는 남아 있고, 무릎탁 총각은 바로 그 자리를 명리를 공부하는 까닭으로 듭니다.
전 5년·후 5년이라는 통설
대운에도 간(干)과 지(支)가 있으니 앞의 다섯 해는 천간으로, 뒤의 다섯 해는 지지(地支)로 나누어 본다는 설이 옛 책에 있습니다. 전통은 그렇게 자르지 않고 열 해를 한 덩어리로 읽습니다. 몇 년째부터 무엇이 온다는 식의 셈은 하지 않습니다.
대신 간과 지 사이의 기울기를 봅니다. 위아래가 같은 오행으로 선 대운은 그 구간의 힘이 두터워지고, 한쪽이 다른 쪽을 생하는 대운은 생을 받는 쪽이 조금 더 힘을 얻습니다. 무게는 지지 쪽에 조금 더 실립니다. 대운이 월주에서 나온 계절의 운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한 해의 운인 세운(歲運)은 마음에 먼저 내려앉는 운이라 천간 쪽을 조금 더 무겁게 본다는 것이 전통이 세워 둔 대비입니다.
교운기, 계절이 갈리는 문턱
계절이 갈리는 데에는 문턱이 있습니다. 대운이 바뀌는 어름을 교운기(交運期)라 부릅니다. 방국 30년 안의 세 대운에도 각각 이름이 있어, 처음이 입운(入運), 가운데가 유운(遊運), 마지막 토(土) 대운이 출운(出運)입니다. 무릎탁 총각이 가장 무겁게 보는 교기는 이 출운에서 다음 방국으로 넘어가는 지점입니다. 목의 구간이 화의 구간으로 갈리듯 30년 국면이 통째로 바뀌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턱에서는 다음 구간의 길을 예비하는 씨앗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사람의 인연이나 일의 변화 같은 계기가 그것입니다. 다음 계절의 결이 미리 읽히면 거스르는 것을 덜고 반기는 것을 살릴 여지가 생깁니다. 무릎탁 총각이 명리 공부가 실제로 쓸모 있어지는 지점으로 이 대목을 꼽는 까닭입니다. 참고로 대운이 갈리는 나이인 대운수는 절기까지의 날수를 셋으로 나누어 얻는데, 만세력마다 표기가 한 해 안팎 갈리기도 합니다. 교운기를 함께 보면 그 차이를 무겁게 다루지는 않습니다.
결국 대운은 겁낼 것도 조를 것도 아닌, 지금 내 차가 지나고 있는 길의 이름입니다. 같은 열 해라도 어떤 차가 어떤 상태로 그 길에 들어섰는가에 따라 이야기가 전혀 달라집니다. 지금 내 여덟 글자가 어느 계절의 몇 번째 구간을 지나고 있는지, 다음 문턱은 몇 해 뒤에 오는지 한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길을 알면 운전이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