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는 이런 순서로 봅니다
열 걸음이라는 차례
사주를 잘 보는 사람이 판을 펼치자마자 한 글자를 짚어낸다는 말이 돌아다닙니다. 그 말의 절반만 사실입니다. 아무 데나 짚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차례를 아주 빠르게 밟는 것입니다. 무릎탁 총각은 그 차례를 열 걸음으로 정리해 두었는데, 타고난 사주 곧 원국(原局)에서 여덟을 보고 그 위를 지나가는 운에서 둘을 봅니다.
기준점을 잡는 앞 걸음
첫걸음은 일간(日干)입니다. 태어난 날에서 나온 이 한 글자가 나 자신을 가리키고, 나머지 일곱 글자의 뜻은 전부 나와 어떤 사이인지로 정해집니다. 기준점이 서지 않으면 그다음 걸음이 전부 허공에 뜨니, 일간이 맨 앞에 서는 것입니다. 일간을 볼 때는 겉으로 드러난 나를 속마음과 생활 쪽이 받쳐 주는지 살피는 통근(通根)도 함께 봅니다.
둘째는 조후(調候), 곧 태어난 계절입니다. 같은 일간이라도 추운 계절에 났는지 더운 계절에 났는지에 따라 성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계절은 태어난 달에서 나온 글자, 곧 월지(月支)에 담겨 있는데, 달은 달력의 첫날이 아니라 절기로 끊습니다. 나 자신과 계절, 이 둘이 뒤 걸음 전부의 잣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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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울에 다는 가운데 걸음
기준점과 계절이 잡히면 이제 판 전체를 저울에 올립니다. 사주는 따로 놓여 있지 않아, 서로 끌려 묶이는 짝(합)이 되기도 하고 서로 반대라 흔들리는 자리(충)나 억지로 조정되는 자리(형)가 되기도 하는데, 이런 자리를 합충형(合沖刑)이라 부르며 몇 군데나 걸렸는지 셉니다. 좋고 나쁨을 가리는 표시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 주는 표시입니다.
그다음 판의 불균형을 만드는 기신(忌神)을 찾고, 저울의 기운 곳을 받쳐 주는 용신(用神)과 내 힘이 센지 여린지를 다는 신강약(身强弱)을 함께 봅니다. 일곱째로 격(格)을 보아 어떤 쓰임의 성향을 타고났는지 가늠하고, 여덟째에야 신살(神殺)을 선택적으로 얹습니다. 신살이 맨 뒤에 선다는 것은 그것이 판의 뼈대가 아니라는 뜻이니, 신살 하나로 겁주는 풀이는 이 차례를 거꾸로 세운 것입니다.
그릇 다음에 오는 때
원국의 여덟 걸음이 끝나면 운의 두 걸음이 남습니다. 아홉째는 열 해마다 바뀌는 큰 흐름인 대운(大運)이고, 열째는 한 해의 흐름인 세운(歲運)입니다. 바탕은 그대로인데 그 위를 지나가는 글자가 바뀌면서, 같은 자리의 뜻이 해마다 달라집니다.
운이 차례의 끝에 오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원국이 그릇이고 운이 때라는 것이 이 차례가 품은 문법이라, 그릇을 모르고 때만 물으면 답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지나가는 기운의 성향을 읽는 것은 소식이고, 그 소식 앞에서 무엇을 고를지는 늘 읽는 사람의 몫입니다.
순서는 안 중요하다는 말
재미있는 것은, 이 열 걸음을 일러 준 무릎탁 총각이 정작 순서는 하나도 안 중요하다고 먼저 말한다는 점입니다. 실제 읽기는 머릿속에서 거의 동시에 일어나고, 숙련의 차이는 순서가 아니라 속도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적어 두면 마음이 놓인다 하니, 어차피 그동안 해 온 그대로라는 말을 달아 정리해 둔 것이 이 열 걸음입니다.
사주페이지 결과지의 목차가 바로 이 차례를 따라 서 있습니다. 어느 항목도 혼자 서지 않고 앞뒤 항목과 같은 판을 다른 각도에서 봅니다. 풀이에 앞서 그 사주가 어떻게 나왔는지, 무엇을 그대로 쓰고 무엇을 고쳐 잡았는지 셈의 내역도 그대로 적어 둡니다.
사주를 본다는 것은 결국 이 열 걸음을 내 사주 위에서 밟아 보는 일입니다. 나를 가리키는 글자는 무엇인지, 어느 계절에 났는지부터 제 사주에서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