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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성 이야기 · 2026. 09. 02. · 4분 읽기 · 무릎탁 총각

재성 — 명리가 돈을 부르는 이름

사주에서 돈은 재성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재성이 많으면 재물도 많다는 통념, 그 절반만 사실인 까닭을 무릎탁 총각이 저울 이야기로 짚어 드립니다.

돈을 부르는 이름

명리에는 돈을 가리키는 이름이 따로 있습니다. 재성(財星)입니다. 여덟 글자의 주인은 태어난 날의 기운, 곧 일간(日干)입니다. 이 일간이 다스리는 기운, 다시 말해 내가 극하는 오행(五行)이 바로 재성입니다. 극한다는 말이 거칠게 들릴 수 있으나, 밭을 갈고 재목을 다듬듯 손을 들여 쓸모를 만들어 낸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나무로 태어난 사람에게는 흙이 재성이 되고, 불로 태어난 사람에게는 쇠가 재성이 되는 식입니다.

그래서 강의 전통은 재성을 통장 잔고로만 읽지 않습니다. 재성은 내가 움직여 결과를 만들어 내는 모든 대상, 곧 일감이며 거래처이며 건사해야 할 살림살이입니다. 재물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손을 대어 다루고 부리는 대상이라는 뜻이 이 이름 안에 이미 담겨 있습니다. 돈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내가 세상을 어떻게 부리는가에 대한 이야기인 셈입니다. 그러니 재성을 읽는 일은 곧 내 손이 어떤 종류의 일을 쥘 때 힘이 나는지를 읽는 일이기도 합니다.

굴리는 돈과 쥐는 돈

재성은 다시 두 결로 나뉩니다. 편재(偏財)와 정재(正財)입니다. 쉬운 말로 옮기면 굴리는 돈과 쥐는 돈입니다. 편재는 크게 돌리고 크게 흘려보내는 결입니다. 기회를 알아보는 눈이 빠르고 씀씀이가 시원하며, 여러 갈래에서 재물이 드나드는 흐름을 탑니다. 대신 들어온 만큼 나가는 변동도 함께 안고 갑니다.

정재는 또박또박 쌓는 결입니다. 내 몫이 분명한 돈, 애쓴 만큼 손에 쥐는 돈을 가리킵니다. 월급과 저축처럼 꾸준함이 힘이 되는 자리에서 빛을 냅니다. 어느 쪽이 더 낫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굴리는 결에게 쥐는 방식을 강요하면 숨이 막히고, 쥐는 결에게 굴리는 판을 맡기면 밤잠이 얕아집니다.

강의 전통은 이 둘에 바를 정 자와 치우칠 편 자를 붙였지만, 치우쳤다는 글자에 나쁘다는 뜻은 없습니다. 정해진 길만이 아니라 길 밖으로도 움직인다는 뜻일 뿐입니다. 흐르는 돈과 고이는 돈, 살림에는 둘 다 필요한 물입니다. 결이 다르면 돈을 다루는 손길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요점입니다.

내 살림에서 알아보는 결

이 두 결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살림살이 곳곳에서 얼굴을 내밉니다. 월급날보다 성과급 날에 가슴이 뛰고, 목돈이 생기면 어딘가에 굴려 보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한 이가 있습니다. 편재의 결이 짙은 손입니다. 반대로 수입이 들쭉날쭉하면 액수가 아무리 커도 마음이 놓이지 않고, 통장에 같은 날 같은 숫자가 찍혀야 비로소 발을 뻗는 이가 있습니다. 정재의 결이 짙은 손입니다. 돈을 쓸 때의 손맛, 돈을 모을 때의 마음가짐이 모두 단서가 됩니다.

그래서 강의 전통은 돈 버는 방법을 묻기 전에 돈을 대하는 마음결부터 살핍니다. 같은 장사라도 편재의 결은 판을 넓히는 데서 힘이 나고, 정재의 결은 단골을 지키는 데서 힘이 납니다. 물론 한 사람 안에 두 결이 섞여 있는 경우도 흔하니, 어느 쪽이 조금 더 짙은가를 보는 것이 강의 전통의 눈입니다. 돈 앞에서 스스로를 다그치기 전에 제 손의 생김새부터 확인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제 결을 알면 남의 방식을 부러워하며 애태우는 일도 한결 줄어듭니다.

많음보다 먼저 보는 저울

여기서 통념 하나를 바로잡을 차례입니다. 사주에 재성이 많으면 재물이 넉넉하다는 말이 돌아다닙니다. 그 말의 절반만 사실입니다. 재성은 내가 극하는 기운, 곧 내가 힘을 써서 다루어야 하는 대상입니다. 그렇다면 물어야 할 것은 재성의 개수가 아니라 그것을 다룰 일간의 힘입니다. 강의 전통은 이를 저울에 비유합니다.

저울의 한쪽에는 재성이라는 짐이 있고, 다른 쪽에는 일간이라는 어깨가 있습니다. 어깨가 단단한데 짐이 두둑하면 그 짐은 살림이 됩니다. 그러나 어깨는 여린데 짐만 산더미면 그 짐이 오히려 나를 누릅니다. 재성이 많은데 일간이 약한 결을 두고 재다신약(財多身弱)이라는 이름이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결은 돈 걱정이 끊이지 않거나, 재물을 좇느라 몸과 마음이 먼저 지치는 흐름으로 나타나기 쉽습니다. 이것은 겁을 주려는 말이 아니라, 짐을 덜거나 어깨를 기르라는 신호로 읽으라는 말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재성이 아니라 어깨의 힘을 길러 주는 기운과 시절입니다. 같은 돈이라도 받쳐 주는 어깨에 따라 복이 되기도 하고 짐이 되기도 하는 까닭입니다. 저울을 먼저 읽고 나서야 돈의 크기가 아니라 돈의 형편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명리가 돈을 읽는 순서는 언제나 같습니다. 재성의 많고 적음보다 먼저, 그것을 받칠 일간의 저울을 봅니다.

재성이 옅은 결의 다른 문

그렇다면 재성이 적거나 약한 결은 어떻습니까? 돈과 인연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명리의 기운들은 서로 낳고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들어 내는 기운인 식상(食傷)은 재성을 낳는 자리입니다. 재성이 옅어도 식상이 살아 있으면, 재주와 말과 손끝으로 결과물을 먼저 만들고 그 결과물이 재물로 이어지는 길이 열립니다. 눈앞의 돈을 좇기보다 벌 거리를 기르는 결입니다.

공부와 문서의 기운인 인성(印星)이 도드라진 결은 앎과 자격이 밥이 되는 길을 걷습니다. 어깨동무의 기운인 비겁(比劫)이 든든한 결은 사람을 얻어 몫을 키우는 길을 걷습니다. 재성은 돈이 드나드는 여러 문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그 문이 작으면 다른 문을 넓히면 됩니다. 재성이 옅다는 판 위에서도 저마다 제 문을 찾아 살림을 일군 이야기가 강의 전통에는 수두룩합니다. 여덟 글자 어디에도 막다른 골목은 없다는 것이 명리가 돈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돈 문제 앞에서 우리는 흔히 많고 적음만 셉니다. 그러나 명리는 먼저 결을 묻습니다. 나는 굴리는 손입니까, 쥐는 손입니까? 내 어깨는 지금 지고 있는 짐과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까? 같은 월급, 같은 장사도 결에 맞으면 순풍이 되고 결에 어긋나면 맞바람이 됩니다. 본인의 여덟 글자 속 재성이 어떤 얼굴로 앉아 있는지, 그 짐을 받치는 어깨는 어떤 힘으로 서 있는지 찬찬히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