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성 — 명리가 돈을 부르는 이름
돈을 부르는 이름
명리에는 돈을 가리키는 이름이 따로 있습니다. 재성(財星)입니다. 사주의 주인인 일간(日干)이 다스리는 기운, 곧 내가 극하는 오행(五行)이 재성인데, 극한다는 말은 밭을 갈고 재목을 다듬듯 손을 들여 쓸모를 만들어 낸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무릎탁 총각에게 재성은 통장 잔고만이 아닙니다. 내가 손을 대어 다루는 모든 대상, 곧 일감이며 거래처이며 건사해야 할 살림살이가 재성입니다.
굴리는 돈과 쥐는 돈
재성은 다시 편재(偏財)와 정재(正財) 두 쪽으로 나뉩니다. 쉬운 말로 옮기면 굴리는 돈과 쥐는 돈입니다. 편재는 기회를 알아보는 눈이 빠르고 씀씀이가 시원해 여러 칸에서 재물이 드나드는 흐름을 타되, 들어온 만큼 나가는 변동도 함께 안고 갑니다. 정재는 내 몫이 분명한 돈, 애쓴 만큼 손에 쥐는 돈이라 월급과 저축처럼 꾸준함이 힘이 되는 자리에서 빛을 냅니다.
어느 쪽이 더 낫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굴리는 성향에게 쥐는 방식을 강요하면 숨이 막히고, 쥐는 성향에게 굴리는 판을 맡기면 밤잠이 얕아집니다. 옛 이론이 붙인 치우칠 편 자에 나쁘다는 뜻은 없고, 정해진 길만이 아니라 길 밖으로도 움직인다는 뜻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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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림에서 알아보는 성향
이 두 성향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살림살이 곳곳에서 얼굴을 내밉니다. 목돈이 생기면 어딘가에 굴려 보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한 이가 있는데 편재의 성향이 짙은 손이고, 통장에 같은 날 같은 숫자가 찍혀야 비로소 발을 뻗는 이가 있는데 정재의 성향이 짙은 손입니다. 그래서 무릎탁 총각은 돈 버는 방법을 묻기 전에 돈을 대하는 마음결부터 살핍니다. 한 사람 안에 두 성향이 섞여 있는 경우도 흔하니, 어느 쪽이 조금 더 짙은가를 보는 것이 이 이론의 눈입니다.
많음보다 먼저 보는 저울
사주에 재성이 많으면 재물이 넉넉하다는 말이 돌아다니는데, 그 말의 절반만 사실입니다. 재성은 내가 힘을 써서 다루어야 하는 대상이니, 물어야 할 것은 재성의 개수가 아니라 그것을 다룰 일간의 힘입니다. 저울의 한쪽에는 재성이라는 짐이 있고 다른 쪽에는 일간이라는 어깨가 있습니다. 어깨가 단단한데 짐이 두둑하면 그 짐은 살림이 되지만, 어깨는 여린데 짐만 산더미면 그 짐이 오히려 나를 누릅니다.
재성이 많은데 일간이 약한 성향을 두고 재다신약(財多身弱)이라는 이름이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성향은 돈 걱정이 끊이지 않거나 재물을 쫓느라 몸과 마음이 먼저 지치는 흐름으로 나타나기 쉬운데, 겁을 주려는 말이 아니라 짐을 덜거나 어깨를 기르라는 신호로 읽으라는 말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재성이 아니라 어깨의 힘을 길러 주는 기운과 시절입니다. 그래서 명리가 돈을 읽는 순서는 언제나 같습니다. 재성의 많고 적음보다 먼저, 그것을 받칠 일간의 저울을 봅니다.
재성이 약한 결의 다른 문
그렇다면 재성이 적거나 약한 성향은 돈과 인연이 없다는 뜻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만들어 내는 기운인 식상(食傷)은 재성을 낳는 자리라, 재성이 약해도 식상이 살아 있으면 재주와 말과 손끝으로 결과물을 먼저 만들고 그것이 재물로 이어지는 길이 열립니다. 공부와 문서의 기운인 인성(印星)이 두드러진 성향은 앎과 자격이 밥이 되는 길을, 어깨동무의 기운인 비겁(比劫)이 든든한 성향은 사람을 얻어 몫을 키우는 길을 걷습니다.
돈 문제 앞에서 우리는 흔히 많고 적음만 셉니다. 그러나 명리는 먼저 성향을 묻습니다. 나는 굴리는 손입니까, 쥐는 손입니까. 사주 속 재성이 어떤 얼굴로 앉아 있는지 찬찬히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