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로 직업을 정할 수 있습니까
가장 자주 받는 물음
상담 자리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물음이 있습니다. «무슨 직업 하라고 나옵니까»라는 물음입니다. 사주에 직업의 이름이 적혀 있어서 잘 보는 이는 그 이름을 읽어 준다는 말이 돌아다닙니다. 그 말의 절반만 사실입니다. 사주가 말하는 것은 직업의 이름이 아니라, 태어날 때 두껍게 받은 기운의 결입니다. 같은 결을 지닌 두 사람이 전혀 다른 이름의 일을 하며 살고, 같은 이름의 일터 안에서도 전혀 다른 자리에 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릎탁 총각은 «이 직업 하십시오»라고 잘라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 판의 도드라진 기운이 어떤 갈래의 일에서 제대로 쓰이는지를 말합니다. 이름이 아니라 쓰임을 읽는 것입니다.
일이 기운을 대신 짊어진다
무릎탁 총각의 전통에는 업상대체(業象代替)라는 말이 있습니다. 업(業), 곧 일이 기운의 모양을 대신 짊어진다는 뜻입니다. 태어날 때 어떤 성분을 두껍게 받았다면 그것이 그 사람의 강한 기운이고, 강한 기운은 살아가면서 어떻게든 밖으로 나온다고 이 관법은 봅니다. 출구를 열어 두지 않으면 그 기운이 엉뚱한 데로 샌다는 것이 전제입니다. 그래서 발달한 성분을 일로 태우는 길을 첫 순서에 놓습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일에 쓰므로, 일만큼 크게 태워 주는 통로가 없다는 것이 그 까닭입니다.
여기서 순서가 하나 뒤집힙니다. 흔히 사주 하면 용신(用神)부터 찾지만, 무릎탁 총각은 쏠림이 큰 판일수록 용신보다 업을 먼저 봅니다. 업은 좋으나 싫으나 저절로 하게 되는 자리라 기운이 잘 덜어지고, 용신은 의식해서 짜내야 하는 자리라 힘이 더 든다고 갈라 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방도 두 층으로 갈립니다. 두꺼운 기운은 일로 덜어 내고, 얇은 기운은 개인 삶의 균형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같은 판을 일의 층과 개인의 층으로 나눠 읽는 것이 이 관법의 요령입니다.
도드라진 기운을 일로 쓰는 다섯 갈래
겨루는 기운인 비겁(比劫)이 두꺼우면, 경쟁이 센 환경이나 같은 업종이 빽빽이 모인 전문 영역이 그 기운의 출구가 됩니다. 겨루는 판 안으로 들어가 겨루는 것 자체를 일로 삼는 셈입니다. 무릎탁 총각이 예로 든 것은 같은 업종이 한자리에 모인 전문상가였습니다. 서로 겨루는 자리처럼 보이지만, 그 판에 서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기운이 제대로 쓰이는 무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표현의 기운인 식상(食傷)이 두꺼우면, 알리고 말하고 보여 주는 일이 그 자리가 됩니다. 소리와 몸짓을 쓰는 예술, 사람을 앞에 두고 하는 영업, 뒤를 길러 내는 교육이 모두 그 갈래에 듭니다. 이 기운이 일로 쓰이지 않으면 오지랖이나 구설 쪽으로 새기 쉽다는 단서도 함께 전해집니다.
재물의 기운인 재성(財星)이 두꺼우면 예산·세무·회계처럼 돈과 숫자가 곧 업무의 재료가 되는 일이 출구가 됩니다. 무릎탁 총각이 여기에 붙이는 단서는 조폐공사의 비유입니다. 그 많은 돈을 날마다 만져도 덩어리로 대하면 아무 해가 없지만, 그중 하나를 내 것으로 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결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누르는 기운인 관성(官星)이 두꺼우면 조직과 규범을 다루는 자리에 설 때 그 기운이 일정 부분 소진된다고 봅니다. 쌓는 기운인 인성(印星)이 두꺼우면 학위·면허·자격처럼 문서가 그대로 일이 되는 갈래로 갑니다. 인성의 자산은 만들기가 더디지만 한번 만들어 두면 오래 쓰인다는 관찰이 함께 붙습니다.
같은 기운도 태우는 일은 사람 몫
다섯 갈래는 직업명 목록이 아닙니다. 같은 관성이라도 예측이 서는 조직과 친한 결이 있고, 기간을 정해 혼자 밀고 가는 자리와 친한 결이 있다고 무릎탁 총각은 봅니다. 같은 이름의 일터 안에도 틀을 지키는 자리와 만들어 내보이는 자리가 함께 있습니다. 그러니 물음은 «어떤 직업인가»가 아니라 «어느 무대에 설 때 이 판의 기운이 일로 쓰이는가»로 바뀌어야 합니다. 사주는 기운의 결까지 말하고, 그 결을 어느 일로 태울지 고르는 몫은 끝내 사람에게 남습니다.
직업이 자주 바뀌는 시대일수록
직업의 이름은 생기고 사라집니다. 이십 년 전에 없던 일이 지금은 흔하고, 지금 흔한 일이 이십 년 뒤에는 다른 이름을 달고 있을 것입니다. 직업명을 짚어 주는 풀이라면 이 속도 앞에서 금세 낡아 버립니다. 기운의 결을 읽는 풀이는 사정이 다릅니다. 이름이 바뀌어도 겨루는 기운, 표현하는 기운, 쌓는 기운은 새 이름의 일 속에서 다시 제 쓰임을 찾기 때문입니다.
무릎탁 총각의 전통은 원국(原局)은 경향이고 운(運)은 발동의 시점이라고 가릅니다. 언제 움직이는가는 운의 몫이지만,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 사람인가는 원국이 미리 말한다는 것입니다. 옮기고 싶은 마음이 자주 이는 판이라면, 무대를 바꾸는 일보다 무대의 꼴을 바꾸는 길이 먼저 검토될 자리입니다. 이를테면 가변의 기운이 무거운 판은 한자리의 지속이 얕은데, 고르게 이어지는 일에 앉을수록 옮김이 잦아지고 기간을 정해 한 건씩 맡는 일에 서면 같은 기운이 일 안에서 쓰인다는 역설이 이 독법의 요점입니다. 옮김 자체가 흠이라는 말이 아니라, 이 판의 기운이 어떤 꼴의 일을 요구하는지 읽지 않은 채 같은 꼴의 무대로 되풀이해 옮기는 쪽이 오히려 소모라는 읽기입니다.
그러니 «무슨 직업 하라고 나옵니까»라는 물음은 이렇게 바꿔 물으시기 바랍니다. «내 판에서 가장 두껍게 받은 기운은 무엇이고, 지금 하는 일은 그 기운을 태우고 있습니까»라고 말입니다. 그 답의 첫머리는 태어난 해와 달과 날과 때가 만든 여덟 글자 안에 이미 적혀 있습니다. 자신의 여덟 글자에서 어느 성분이 도드라져 있는지, 한 번쯤 차분히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